11/07/2016

[오스트리아] 유럽인에게 사랑받는 도시 비엔나



Austria

안녕하십니까 저는 코어사업 1기로 오스트리아에 온 독일어과 김형훈입니다.
 
오스트리아는 우리에게 친숙하거나 유명한 나라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몇몇 사람들은 그저 음악의 도시 모짜르트의 나라로만 기억하실 수도 있고
다른 몇몇은 도시가 아름다워 관광하기 좋은 나라 라고만 생각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을 여행한 사람이나 이곳에서 태어나 살아온 비엔나 시민들은
현재 자신들이 걷고 살아가는 이 도시가 중세부터 이어져 온 자신들의 모든 역사와 과거를
현재에도 고스란히 남아 알려주는 울림이 있는 도시라고 말합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이 읽으실 이 글이 비엔나가 어떤 도시이며
어떤 건축물을 자랑하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Stephansdom
 
 빈은 중세의 과거를 품은 도시입니다.
그 말이 증명하듯 수많은 건축물과 도시 속 건물이 중세시대 때 부터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온 장소가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첫번째 상징물이 바로
빈 1구 중심가에 위치해 있는 슈테판 대성당입니다.
 

고딕양식 첨탑과 건물 외벽
 

외벽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흔적



 성 슈테판 성당의 역사와 건축 양식을 알아보기 위해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성당 앞 가이드와 인터뷰를 해 보았습니다.
 
Q: 슈테판 성당은 정확히 언제 지어진 건축물인가요? 
 
A: 12세기 초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만, 원래 이곳 터가 본교구 교회당이었으므로 건축 시기
     를 그때쯤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Q:그럼 원래 대성당을 목적으로 지어진 건축물이 아닌가요?
 
A: 1147년에 슈테판 성인을 기념하여 슈테판 성전으로 헌정되었고 그 시기부터 40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르며 기존에 있던 건축물에 보수 공사와 확장 공사를 통해 오늘날 같은 모습에
     르게 되었습니다.
 
Q: 슈테판 대성당의 공사 당시 어떤 양식의 영향을 많이 받았나요?
 
A: 오랜 시간을 보수와 확장을 겪어온만큼 초기 성당 축조 양식과 후기 성당 축조 양식이 다릅
     니다. 처음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영향을 받아 획일화된 기둥과 조형미를 추구하는 식으
     로 진행되다 1304년에 이르러서는 고딕양식으로 확장공사 되어 화려함을 갖추게 되었고 
     1433년 남첨탑 건설이 마무리 되고 난 후에는 르네상스 양식의 조각상들과 예술품을 추
     해 북첨탑에 돔을 씌움으로써 완성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Q: 현재 슈테판 대 성당이 900년이란 세월동안 견고하게 완성된 작품이란 말씀이신가요?
 
A: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틀린말이기도 합니다. 오랜시간을 들여 완공된 성당은 1945년 2차대
     전의 막바지에 화재로 건물 외벽등 대량 손상을 입고 파괴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오스
     트리아 시민들의 협동으로 7년이란 시간안에 원래의 모습 그대로 복구가 되었습니다.
 
Q: 슈테판 성당의 지하에는 무엇이 있나요?
 
A: 성당의 지하는 깊숙한 곳 끝까지 무덤과 비밀 예배당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쟁시에는
     적을 피해 많은 군인들이 성당 지하에서 지내기도 했으며 역대 합스부르크 왕가 황제들
     의 내장과 심장을 항아리에 담아 보관하고 있기도 합니다.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것은 중
     세 흑사병 당시 화장되었던 수십만구의 유골이 지하에 안치되어있습니다.
 
Q: 오스트리아에 흑사병으로 죽은 유골들인가요? 얼만큼 화장되었나요?
 
A: 대략 50만 구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오스트리아인들에게 슈테판 성당은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A: 모두를 대표할 순 없지만 저에게는 슈테판 성당은 집과도 같은 곳입니다. 빈에서 태어나 평
     생을 이 성당 첨탑을 보며 살았고 이 성당의 역사와 가치를 사랑하며 어디에 가서도 이러한
     사실을 자랑스러워 하기 때문입니다. 꼭 저가 아니라도 슈테판 성당을 집처럼 여기며 사랑
     하고 아끼는 마음은 아마 비엔나 시민에겐 모두가 같을 것입니다.
 
 

현재도 슈테판 성당은 실제 미사를 진행한다

곳곳에 조각품들로 장식된 성당 외벽
 


 



내부는 상당히 어둡지만 좁게 들어 오는 빛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내부를 구경할수 있다
 



카타콤 투어를 마치고 나오면 이렇게 관광객을 위한 마차들이 대량으로 준비중에 있다
관광객의 상당수는 이 마차를 이용해서 슈테판 플라츠를 구경하고 돌아온다
 





Schönbrunn Schloss
 
두번째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상징인 쉔브룬 궁전인데
쉔부룬 이란 의미는 바로 아름다운 우물이란 뜻으로써 옛날 왕가 식구들이
이곳에서 물을 길어 옴으로써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건축물은 사실 오스트리아의 여황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상징적인 건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전 역대 황제들의 여름 휴가 별장 터로도 쓰였고
레오폴드 1세의 명으로 1696년 먼저 새 왕궁의 건축 시공이 들어 갔지만
사실 현재 이 궁전의 전체적 외관을 로코코양식으로 완성시켜
수많은 예술의 집회장으로 만든 장본인이 바로 이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오스트리아의 왕궁은 대부분 내부가 촬영이
금지이기 때문에 외부만 사진을 찍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공영방송이나 공공재단을 위해서는 극히 일부분만 촬영을 허락한다고도 들었다.
 
 
 
 
쉔브룬 궁전 정원

 
 
 
쉔부른은 궁전 자체의 아름다운 예술품과 역사를 제외하고도
웅장한 정원과 동물원으로도 유명한데 여기서 알려준 바에 의하면 이곳에 있는 빈 동물원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곳이라고도 한다.
 
 
궁전 안 내부는 통행에 필요한 일부분을 제외하곤
최대한 옛날 모습 그대로를 보존하려 노력한다고 한다
 
 


분수를 시작으로 끝없이 펼쳐진 정원에 다다른다.

 

 
Statuen

비엔나는 도시 곳곳에 조각상이 참으로 많다!
각각의 사연을 가진 성자들 부터 시작해서 신화적인 인물
어린아이 동물 조각상 그리고 역사적 인물까지 꼭 관광지가 아니어도
건물마다 오래전에 조각해둔 조각상들이 즐비하다.











 
Wiener Staatsoper

2차 대전 후반에 거의 대부분이 파괴된 빈 국립오페라 하우스는 빈의 자존심이자 슈테판 성당과 함께한 상징물이었다. 전 후 10년의 피나는 노력으로 사라진 빈 국립 오페라 하우스를 재건하는데 성공하였으며 외관은 오랜 전통의 옛 건물 과 같은 양식으로 복원하면서 내부는 좀더 쾌적하고 현대에 맞춘 좌석 배치로 리모델링 하여 1955년 새로 개관하였다. 현재도 빈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 꼽히고 있다.



 
내가 방문한 날은 발렛 공연만이 상영중이었는데
암표상들이 정말 2분마다 달라붙어서 티켓 구매를 요구한다.
알고보면 본 티켓 구매 가격보다 더 비싼것들도 많다.
 
현장에서 현금을 주거나 카드도 결제를 해 가는데
표를 구할 줄몰라 두리번 거리는 관광객에게 주로 접근한다.

 
 
내부입장 대기실을 지나 들어가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입장만을 기다리고 있다.

 
 
 
오페라 하우스는 화려한 야경으로도 유명한데 호프 부어크 왕궁과도 가까워
사람들이 산책로도 많이 찾는 곳이다.
 
오늘 블로그에 올린 세곳의 관광지는 사실 빈에서 자랑하는
상징물의 5%도 채우지 못할 정도로
 빈에는 찾아가야하고 설명해야하며 공부해야하는 역사적 건축물과
관광지가 수도 없이 많이 남아있다.
 
비엔나의 건축물들은 모짜르트가 젊은 시절을 보내고 연주회를 열었으며 베토벤이 노후를 보냈고 그 외 수십명의 세계적인 음악가와 수십만의 예술가들이 살았으며 역대 황제들과 수많은 문학가, 군인, 정치가, 화가, 상인, 건축가들이 모여 도시를 계획적으로 만들어 왔으며 그런 결과에 세계 여러 독재자들이 한때 탐을 냈기도 했던 도시이다.
 
아직도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도시의 건축물들은 지금도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사람들을 맞이 하고 있다.